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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도의 도박 인생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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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의 달콤한 유혹


자석에 끌리듯 바카라 테이블로 향했습니다. 만 불짜리 갈색 칩, 5천 불짜리 칩, 그리고 100불짜리 몇 개가 남아있던 칩들을 전부 포개서 플레이어 베팅 구역에 올려놓았습니다.


이건 제가 베팅한 게 아닙니다. 마치 귀신이 씌운 것처럼...


*"페라도야, 본전 찾아야지... 어디 가는 거야? 오빠가 본전 찾아줄게... 플레이어가 지금 좋네..."*


딜러는 계속 카드를 까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제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카드 깔 거야?"

"노"


감정 없는 표정으로, 무미건조하게 서 있던 딜러가 2와 7을 오픈했습니다. 홀덤에서는 7-2가 최악의 패죠. 순간 '아, 죽어야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딜러가 3만 몇백 불을 건네주는 겁니다. 이긴 건데... 기쁘지도, 설레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무감각했죠. 받은 칩을 그대로 다시 플레이어 앞에 올려놓고 딜러를 바라봤습니다.


딜러의 손을 지켜봤습니다. 얇고 가늘고 긴 손가락, 마귀 같은 손도 있고, 통통하고 뽀얗게 보이는 손도 있죠. 나이는 좀 있어 보이는데 손이 뽀얀 딜러가 착착착 카드를 까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단두대 칼날이 목에 떨어지듯... 또다시 내추럴 나인이 나왔습니다.


아까 15,000불이었던 칩이 1분도 안 돼 6만 불이 넘게 불어났습니다. 이건 마술이야. 매직이다.


"이게 뭐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주섬주섬 칩을 챙기며, 누가 잡을 것처럼 빨리 도망치듯 나왔죠. 카지노 귀신에 홀린 것처럼 멍한 채로 했던 바카라가 마치 꿈만 같았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바람이 훅 들어왔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에라이 미친놈아! 미쳤네, 미쳤어! 데스페라도 세상에... 미쳤네, 또라이 새끼... 바카라에 손을 대다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홀덤 플레이어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바카라를 했다는 죄책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날아갈 것 같았죠. 6만 불이 넘는 돈,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단 1분 만에... 15,000불(약 250만 원)이 1천만 원이 된 거죠.


"야... 오늘 아침에 잃은 거 다 찾았네."


기분이 다시 좋아지면서 엔돌핀이 돌았습니다.


"그래,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이제 모든 전환점, 변곡점이 오늘 이거일 거야."


하지만 이성이 말했습니다.

"페라도, 오늘은 운 좋게 이겼는데 바카라는 진짜 하면 안 되는 거다.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윈이 호섭이한테 진 거에 대한 배드빗 잭팟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열심히 포커만 치자."


이후 마카오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찌는 듯이 덥고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철로 접어들고 있었죠. 이미 3개월이 넘게 지났고, 호텔 생활의 경비도 많이 들어 사우나도 줄이고,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방 네 개짜리 월세를 얻었습니다.


홀덤 고수들과 함께 살면 재미있습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같이 밥 먹고, 골프 가서 외식하고...


"야, 오늘 어땠어?"

"오늘의 핸드 복기 좀 해보자."


실력이 늘어나는 크루생활. 하지만 아무나 들어갈 순 없죠. 돈이 있다고 해서 안되고, 실력도 있어야 하고 인성도 갖춰야 합니다. 거의 형제 같은 사이죠.


미국도 갈 생각도 하면서, "어디 물 좋다는데..." "야, 이번에 동패 써서 시합 같이 나가자." "네가 제일 잘하니까 토너먼트 네가 나가." 이런 식으로 고민 상담도 하고...


집에 와서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형, 내가 호섭이한테 이렇게 넘어가서 15,000불 잃었다가 바카라로 본전 찾았어."


다들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다가, 인생 경험이 풍부한 형이 말했습니다.


"야, 페라도... 형 주변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홀덤 잘하다가 바카라 까이고 인생 나가는 거 얼마나 많이 봤는데..."


형이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이놈아, 그렇게 한두 번 하다가 보면 어느 날 정말로 귀신이 들러붙어. 바카라 귀신 붙으면 아무도 못 빠져나와. 진짜 10불짜리 하나, 홍콩달러 25불... 제일 작은 돈까지 배팅하게 되는 거야. 그거 다 잃고 나서야 바카라 귀신이 어깨에서 떠나."


"예, 형... 알겠어요. 아유, 저 걱정하지 마세요. 나 스스로를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어요. 앞으로 안 할게요."


하지만 형의 충고를 가슴 깊이 새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겼으니까요. 그리고 처음이었으니까.


"내가 자제력 하나만큼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원판을 걷는 포커 생활도 그 자제력으로 버텨왔는데... 형님, 걱정 마세요."


바카라 사건 이후로 전환점을 맞아 포커가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 안 됐습니다. 


전환점, 변곡점을 딱 넘어서면 5일선에 부딪히고 그걸 버티면 우상향으로 쭉 올라가야 하는데... 계속 내리막길이었습니다. 베드런(bad run)이 지독하게 이어졌죠.


안 좋아지니까 인내심이 부족해졌습니다. 평생을 자제력과 인내심으로 살아왔는데, 계속 지고 호구한테 당하니까 인내심이 바닥났죠. 홀덤도 너무 지루했습니다. 돈을 못 따니까 더욱 지루한 거죠.


좋은 카드 올 때까지 견디면서 기다려야 하는데... 이걸 못 참으니까 제가 블러프할 타이밍을 만들어냅니다.


"아, 이번에 체크-레이즈 해서 체크하고 리레이즈 치면 되겠다."


시원하게 쳤더니 상대가 스냅콜.


"좆됐네... 블러프 걸렸네..."


매번 이런 식입니다. 오버벳도 하고... 원래는 13,000불만 쳐야 하는데 62,000불을 치고...


"뭐야, 빅 밸류벳인가? 아, 세컨드 페어 맞았나?"


히어로콜로 영웅처럼 콜했다가 세컨드 페어 맞아서 2등 카드로... 그런데 상대방은 1등 카드가 여지없이 나옵니다.


이런 실수로 큰 팟을 졌을 때... 5천 불, 만 불씩 잃을 때... 100-200에서 한 판에... 그때 보이는 게 뭔지 아십니까?


건너편 바카라 세계.


"Welcome to Baccarat"


지금 당장 뛰어나가서 꽝꽝 찍어서 1분 만에 잃은 거 찾아올까... 이런 생각이 쫙 끌어올라옵니다.


아직까지는 안 했습니다. 아직은 이성이 요만큼 실가닥처럼 남아있어서...


"안 된다, 안 된다, 하지 마, 안 돼, 참아야 돼..."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느지막이 카지노로 향했습니다. 빨리 가고 싶지도 않았죠. 재미있고 신나야 빨리 가지... 그냥 도살장 끌려가듯이 어슬렁어슬렁 갔습니다.

쉬고 싶은데... 쉬면 또 뭐 할 거냐... 이래서 매몰되면 안 됩니다. 자기 직업이 있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여행도 좋아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주변 동료도 많아야 하고, 여가 시간도 있어야 합니다. 홀덤은 고행이에요. 가시밭길을 걷는 수도승처럼 해야 하죠, 어느 경지까지 올라가기 전까지는.

느즈막하게 도착해보니 한산했습니다. 100-200 테이블을 보니... 하하, 호섭이가 완전히 레귤러가 돼 있네요. 그냥 귀신이 돼있어요. '작대기'가 된 거죠. 칩을 쫙 쌓아놓고 바가지 머리로 호주 레귤러한테, 포르투갈 레귤러한테 블러프를 시원하게 치면서 또 다 먹고 있었습니다.

테이블에 처음 보는 관광객이 앉아있었는데... 한국 사람이네요. 50대 중반의 대머리... 바둑이도 좀 치고 한국 홀덤장에서도 좀 굴러먹은 것 같은 아저씨요. 도박 경력 28년차라나... 마카오 물이 좋다는 소문 듣고 날아온 도박꾼 같았습니다.

빼빼 말랐는데 날카로워 보이는 아저씨... 딱 봐도 '호구' 스타일이었죠. 잽싸게 8만 불로 바인(buy-in)해서 남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 한국 아저씨하고 호섭이만 타겟으로 잡으면 되겠다.'

매일 보는 애들은 서로 잘 알아요. 호흡도 알고, 베팅 패턴도 알고... "525 던지면 쟤는 뭐네", "체크하면 쟤는 뭐네"... 다 아는 사이죠.

운 좋게도 두 '호구'가 제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먼저 순서가 돌아가니까, 이 사람들의 액션을 보고 제가 게임할 수 있어서 유리하죠. 껄끄럽고 만만한 애들은 내 오른쪽에 두는 게 좋거든요. 뒤쪽으로는 불편하니까.

'오늘은 차분하게, 정말 홀덤다운 홀덤을 치자. 내 플레이, 후회 없도록 완벽하게...'

 

첫 핸드를 받았습니다. Q♠Q⋄... 까만 빨간 퀸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죠.

컷오프 자리였던 호섭이가 콜만 했고, 한국 아저씨도 림프 콜. Q♠Q⋄를 들고 2,400불(약 40-50만 원)을 레이즈했습니다. 작은 돈이 아니었죠.

타겟으로 삼은 두 명이 스냅 콜로 따라왔습니다. 퀸-퀸을 들고 2,400불에 두 명이 콜한 상황.

플랍으로 A♠3♣4♥가 깔렸습니다. 무늬는 전부 달랐어요. 호섭이가 플랍을 보자마자 느닷없이 7천 불을 동크벳(donk bet)했습니다.

'뭐야, 에이스 있다는 얘기잖아?'

그런데 한국 아저씨가 그걸 또 스냅 콜.

'아... 한 명이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하나는 배팅하고 하나는 콜이야. 퀸페어 가지고... 에이스 깔렸는데 세게 배팅하고 그걸 스냅콜 받으니까...'

짜증이 엄청 밀려오고 열이 막 올라왔지만, 폴드했습니다. 교과서적인 폴드죠.

'너네 처먹어라.'

퀸-퀸을 그냥 똥창으로 던져버렸는데... 호섭이가 보여준 건 9-9. 파켓 나인으로 7천 불을 동크벳 친 거였어요. 그걸 콜한 한국 아저씨는 3-5... 3 하나 맞고 스트레이트 드로우...

결국 뒤의 카드들은 아무 의미 없는 것들만 나와서 파켓 나인이 이겼고, 또 몇 만 불을 쓸어갔습니다.

'돌아버리겠네...'

이렇게 세 시간 동안 이 두 사람한테 한 판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8만 불로 바인했는데 절반이 날아가 4만 불밖에 안 남았어요.

얘들한테 찍어 먹히고... 점점 날아가는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저 두 명을 한 방에 보내기 위해서... 주섬주섬 4만 불을 더 채워 넣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 홀덤 용어

- 베드런(Bad run): 연속해서 지는 불운의 시기

- 체크-레이즈(Check-raise): 체크 후 상대의 베팅에 레이즈로 대응하는 전략

- 스냅콜(Snap call): 즉각적인 콜

- 오버벳(Overbet): 팟보다 큰 금액을 베팅하는 것

- 히어로콜(Hero call): 블러프를 의심하고 하는 용기있는 콜

- 빅 밸류벳(Big value bet): 큰 금액의 가치 베팅


- 핸드 복기: 게임이 끝난 후 플레이를 분석하는 것

- 크루(Crew): 함께 게임하고 생활하는 포커 플레이어 그룹

- 배드빗 잭팟(Bad Beat Jackpot): 강한 패로 지는 경우 받는 보상금

- 토너먼트(Tournament): 포커 대회


# 카지노 용어 설명

- 내추럴 나인(Natural Nine): 바카라에서 가장 높은 패

- 플레이어(Player): 바카라의 베팅 구역 중 하나

- 뱅커(Banker): 바카라의 다른 베팅 구역

- 바인(Buy-in): 게임 참가를 위해 칩을 구매하는 것

- 칩(Chip): 카지노에서 사용하는 화폐 대신의 게임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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