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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도의 도박 인생 1-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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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 반신욕으로 여독을 풀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파라다이스구나. 마카오에서 20억 정도는 벌어서 금의환향 해야겠어.'


하지만 흥분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뒤척이다 겨우 선잠에 빠졌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홍콩달러 2만 불을 챙겨 윈 포커룸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카오 홀덤장의 가장 큰 장점은 24시간 내내 게임이 돌아간다는 겁니다. 웨이팅이 있을 순 있어도, 게임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없었죠.


필리핀에서는 밤 9시나 돼야 게임이 열립니다. 그것도 주인 친구, 길러 친구 같은 지분권자들이 와서 억지로 시작하는 분위기였죠. 누군가 뚜껑이 열려서 화끈하게 게임을 만들어주기 전까진 재미도 없었습니다.


아침 7시, 윈 포커룸에 도착하니 10-25 테이블 두 개, 25-50 테이블 두 개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25-50 테이블에 빈자리가 하나 있었죠.


테이블에 앉자마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습니다. 4개월 전 세부 워터프론트에서 같이 게임했던 쿠웨이트 부자였습니다. 완전한 '꽃방' 스타일로 게임을 하는 사람이죠. 무조건 콜, 무조건 올인. 마치 베트남전 참전용사처럼 모든 전투에 참전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와, 여기서 또 만나네! 돈 좀 먹어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 분위기를 살폈습니다. 밤새 도박으로 눈이 충혈된 플레이어들이 다섯 명. 쿠웨이트 형도 그중 하나였죠.


"How many loss?"(얼마나 졌어요?)


물어보니 쿠웨이트 형이 25-50 테이블에서 7만 불을 잃었다고 합니다. 당시 환율로 1억 3천만 원이 날아간 거죠. 남은 칩이 15,000불 정도. 


*'이거 전부 다 털릴 때까지 앉아있겠구나.'*


테이블에 앉은 지 5분 만에 중간 포지션에서 킹-킹을 받았습니다. AA가 최상의 패라면, 킹-킹은 시작 패 중 넘버 2입니다. 앞에서 두 명이 콜을 했고, 저는 500불을 레이즈했습니다.


보통은 이 정도 레이즈면 작은 패들은 다 접고, 진짜 싸움할 만한 패만 남거나 2-3명 정도만 콜할 텐데... 


"콜."

"콜."

"콜."


믿기지 않게도 줄줄이 일곱 명이 전부 콜을 했습니다.


*'뭐야 이게... 킹-킹을 들고 여덟 명이서 보는 거야?'*


생존 확률이 10-20%밖에 안 되는 최악의 상황. 보통은 이런 판을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손안의 킹-킹을 버리기가 너무나도 힘들었죠.


플랍이 열렸습니다.


킹(스페이드) - 퀸(다이아) - 10(스페이드)


세 장의 커뮤니티 카드가 공개되자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킹 트립스(같은 숫자 세 장)가 만들어졌지만, 스페이드 두 장이 깔린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거 더러운데... 이길 확률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팟이 이미 4,000불.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4,000불을 더 베팅했습니다.


"난 뒤져도 좋다. 이거 다 내 돈이다!"


그런데 쿠웨이트 형이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바로 콜을 했고, 임신한 듯한 배가 나온 중국 여성도 콜을 했습니다.


턴 카드로 하트 2가 나왔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카드였죠.


*'좋아, 아직 안전해.'*


자신감을 가지고 5,000불을 추가 베팅했습니다. 


쿠웨이트 형이 이번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3분 정도 고민하다가 "콜"을 외쳤습니다. 중국 여성은 눈이 커지더니, 남은 3,000불을 전부 올인했죠.


팟이 3만 불을 넘어섰습니다.


*'제발... 제발... 스페이드만 아니게...'*


딜러가 리버 카드를 공개했습니다. 


에이스(스페이드).


순간 피가 싹 날랐습니다.


*'씨... 잭만 없어야 할텐데... 제발 잭만 없기를...'*


첫 베터로서 카드를 오픈해야 했습니다. 킹-킹을 보여주자 쿠웨이트 형이 망설임 없이 잭-텐(스페이드)를 까보였습니다. 너트 플러시(최고의 플러시)였죠.


중국 여성의 패는 믿기 힘든 잭-7. 그냥 아무것도 아닌 드로우(가능성 있는 패)였던 겁니다. 둘 다 8천 불 이상을 던져버린 셈이죠.


*'이런 미친... 이런 플레이어들이랑 게임을 하고 있다고? 이런 폭주기관차들이 있나...'*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멍하니 테이블에 앉아있었습니다. 포커를 치다 보면 리버 역전은 자주 일어납니다. 하지만 드로우를 걸고 저렇게 올인을 해버리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죠.


눈앞에 있던 3만 불.


*'저걸 먹었으면 편하게 시작할 수 있었는데...'*


남은 2만 불 중에서 1만 불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바로 다음 판, 같은 무늬의 8-9를 받았습니다. 빅블라인드를 내고 있는데 누군가 200불을 베팅했죠.


*'에라 모르겠다.'*


콜을 했더니 플랍으로 5-6-7이 나왔습니다. 


*'스트레이트다! 너희들 다 죽었어!'*


사연 있는 놈들이 들어오길 바라며 다시 한번 올인 베팅을 밀어붙였습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폴드를 선언했지만, 아까 그 봉철이를 닮은 중국 아저씨가 한참을 고민하다 콜을 했습니다.


거의 만 불에 가까운 팟이 만들어졌고, 턴 카드로 다이아몬드가 한 장 나왔습니다.


*'제발... 클로버 같은 거나 나와라... 제발...'*


하지만 리버에서 스페이드가 떨어지자 중국 아저씨의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먼저 오픈해야 하는 저는 5-6-7-8-9의 스트레이트를 보여줬습니다. 중국 아저씨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카드를 까보였죠.


2-4(스페이드).


*'미쳤나... 저런 쓰레기 패를 들고 180만 원을 콜해?'*


2만 불이 날아가는 데 고작 5-1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두 판 연속으로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지고 만 겁니다.


쿠웨이트 형에게 인사도 못하고 터벅터벅 호텔로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양차 드로우로 올인하고, 쓰레기 플러시 드로우로 올인하는 놈들이 있다고? 야... 물 좋네. 물이 아주 좋아. 너희들 다 죽었어.'*


이렇게 페라도의 첫 마카오 도전은 시작되었습니다. 홀덤 플레이어들은 세부에도 가고, 마닐라도 가고, 클락도 가고, 마카오도 가고, 베트남 다낭도 가고, 호치민도 가고, 호이안도 가고, 사이공도 가고, 하노이도 가고, 캄보디아도 갑니다. 물 좋다는 소문만 들리면 전 세계 어디든 찾아가는 게 홀덤 플레이어들의 특징이죠.


# 포커 용어 설명

- 트립스(Trips): 같은 숫자의 카드 3장으로 만드는 패

- 너트 플러시(Nut Flush): 가능한 플러시 중 가장 높은 플러시

- 드로우(Draw):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가능성이 있는 패

- 올인(All-in): 가진 칩을 모두 베팅하는 것

- 플러시 드로우(Flush Draw): 플러시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패

- 스트레이트(Straight): 연속된 숫자 5장으로 만드는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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