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도의 도박 인생 1-1편
2024-10-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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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덤 플레이어의 마카오 도전기 - 1편
"카지노가 직장이고 겜블이 직업입니다."
2008년, 필리핀에서 홀덤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한 플레이어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닉네임은 '페라도'. 필리핀에서 완전히 거지 신세가 되어 겨우 구한 80만 원으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홀덤을 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마닐라 하얏트 카지노에서 아시안 포커 토너먼트가 열렸습니다. 호주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고, 2, 3, 4등을 모두 한국 선수들이 차지했죠. 이때부터 아시아에 홀덤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페라도는 토너먼트가 끝난 후 캐시게임장에 앉았습니다. 겨우 모은 80만 원으로 테이블에 앉아 전 아시아에서 모여든 플레이어들을 상대했죠. 그리고 놀랍게도 3개월 만에 8천만 원을 만들어냅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네, 가능했습니다. 2009년 당시는 아시아권에서 한국 사람들이 막 홀덤에 입문하던 시기였거든요. 홀덤을 잘 치는 사람들이 "어린애 손목 비틀고 사탕 뺏어가는" 정도로 쉽게 이길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운도 따랐죠. 3개월 동안 이틀을 빼고는 매일같이 게임을 했습니다. 50-100 테이블에서 꾸준히 승리를 쌓아갔고, 마침내 8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모았습니다.
*'이제 나는 포커의 신이다! 연말까지 3-4억은 거뜬하겠는데?'*
바로 그때, 같이 게임하던 동생이 한마디를 던집니다.
"페라도 형, 마카오에 새로 홀덤장이 생겼대요. 중국 애들이랑 완전 대박 판이래요. 형 실력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한번 가보시죠?"
마닐라에서 두 시간밖에 안 걸리는 마카오. 다음 날 바로 티켓을 끊었습니다.
당시 마카오에는 이미 많은 전업 홀덤 플레이어들이 와있었습니다. 1세대 레귤러들이죠. 홀덤 플레이어들은 미국, 러시아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물 좋은'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바둑 고수가 전국을 돌며 내기 바둑을 치는 것처럼요.
페라도는 80만 원으로 8천만 원을 만든 자신감을 안고 마카오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가슴 속에는 막연한 기대감과 부푼 꿈이 가득했죠.
2월의 마카오는 춥습니다. 12월, 1월보다도 더 추운 2월, 최저기온이 영상 6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영상 12도만 돼도 사람들이 패딩을 입고 다니는 곳이죠. 난방도 제대로 안 되어 라디에이터로 겨우 온기를 유지하는 곳에서, 전기장판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걸 곧 깨닫게 됩니다.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추웠습니다. 마닐라의 따뜻한 기운을 뒤로 하고, 마카오 중심가에 도착했습니다. 리스보아, 윈, 스타월드가 있는 구역이었죠. 타이파 지역은 아직 베네시안도 개장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먼저 와있던 형들에게 물어 스타월드에 예약을 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건너편 윈 카지노로 향했죠. 당시 마카오에서 유일하게 홀덤 테이블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 - 홀덤(Hold'em): 텍사스홀덤의 줄임말, 2장의 히든카드와 5장의 커뮤니티 카드로 즐기는 포커 게임
- - 캐시게임: 실제 돈을 걸고 치는 포커 게임
- - 블라인드(Blind): 포커에서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베팅 금액
- - 레귤러(Regular): 전문적으로 포커를 치는 플레이어
스타월드에서 윈 카지노의 홀덤장까지 가는 길은 꽤 멉습니다. 입구에서 반대쪽 대각선으로 끝까지 걸어가야 했죠. 양쪽으로는 바카라 테이블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2008-2009년 당시의 윈은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부시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자랑했습니다.
홀덤장 끝자락에는 10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었습니다. 그중 25-50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죠. 25는 스몰 블라인드, 50은 빅 블라인드입니다. 지금은 물가가 올라 50-100이 최저판이지만, 당시엔 10-20부터 시작했었죠.
'이제 시작이다.'
홀덤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50-100 테이블은 최소 5천 달러(약 80만 원)부터 최대 2만 5천 달러(약 400만 원)까지 들고 앉을 수 있습니다. 스몰 블라인드 50, 빅 블라인드 100을 돌아가며 의무적으로 걸어야 하는 '학교'를 내는 거죠.
페라도는 25-50 테이블에 웨이팅을 걸어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때 중국인들 특유의 혀 짧은 발음으로 "페이라도, 띠니 빠띠"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순서가 되었다는 뜻이었죠.
첫 날이라 피곤했습니다. 게다가 화폐 가치도 많이 달랐죠. 필리핀에서는 100이 2,500원이었는데, 여기서는 100이 18,000원이니까요. 돈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게 다 뭐지...'
모든 핸드가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좋은 패가 와도 꼭 2등이 되고... 마지막 판에서는 제가 닮았다는 중국인 플레이어에게 블러프를 시도했습니다.
에이스-킹을 들고 쓰리벳을 했죠. 플랍, 턴, 리버까지 계속 베팅을 밀어붙였습니다. 하나도 맞지 않았는데도 계속 블러프를 친 겁니다. 마지막에 깔린 카드는 Q-J-9-2-4.
그런데 그 중국인이 뭘 들고 콜을 했는지 아십니까? 하나 맞은 탑 페어로 끝까지 콜을 한 겁니다. 첫 삽이 오링이 됐죠.
'이런 미친... 이런 플레이를 하는 놈들이 있나?'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감이 올라왔습니다.
'당장 돈 더 꺼내서 바인(buy-in)하면 본전은 금방 찾겠는데? 이 새끼들 돈 다 빨아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제 포커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 왔으니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했죠.
25불짜리 칩 몇 개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지금은 1-2천 게임도 열리지만, 당시에는 300-600, 500-1000까지 있었고, 100-200이 최고 레벨이었습니다. 100-200이면 스몰 블라인드가 18만 원, 빅 블라인드가 36만 원이에요.
테이블마다 적게는 500만 원에서 많게는 3천만 원씩 쌓아놓고 게임을 하는 걸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기다려라, 이놈들아. 나도 곧 2-3천만 원씩 놓고 게임할 거다.'
30분 정도 게임을 지켜보니 금액에 비해 실력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마닐라 같았으면 '마귀'들(고수들)이 빅스택을 놓고 앉아있거나, 호구 아저씨 한두 명을 노리고 있었을 텐데, 여긴 좀 말랑말랑해 보였습니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계속 림프(리mp)를 시도했는데, 림프란 조용히 게임에 스며드는 전략입니다. 공격적이지 않고 콜 위주로 게임을 하는 거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자책했습니다.
*'이런 바보... 왜 이제서야 마카오에 온 거야!'*
[다음 편에 계속...]
- # 포커 용어 설명
- - 블러프(Bluff): 좋지 않은 패를 가지고도 공격적으로 베팅하는 전략
- - 쓰리벳(Three-bet): 리레이즈, 세 번째 베팅
- - 플랍(Flop): 첫 세 장의 커뮤니티 카드
- - 턴(Turn): 네 번째 커뮤니티 카드
- - 리버(River): 마지막 다섯 번째 커뮤니티 카드
- - 탑 페어(Top Pair): 보드의 가장 높은 카드와 같은 숫자의 패어
- - 바인(Buy-in): 게임 참가를 위해 칩을 구매하는 것
- - 빅스택(Big Stack): 많은 양의 칩을 보유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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