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무원의 카지노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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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 어느 토요일
처음 경험한 강원랜드 머신에서 돈을 딴 나는 500원짜리 동전 2,700개를 만원짜리 지폐와 수표로 환전한 후 곧바로 강원랜드 문을 나왔다.
물론 ‘게임을 더 해볼까?’ 라는 생각도 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그때는 왜 그랬는지 그 135만 원으로도 너무 뿌듯했고, 친구들한테 맛있는 음식도 사야 할 것 같았다.
그 길로 태백을 지나 동해바다까지 달린 우리 일행은 삼척 임원항에 있는 어느 모텔에 짐을 풀고 모듬회에 소주 한잔을 마시면서 오늘의 무용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술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도 나의 머릿속은 온통 강원랜드 머신의 움직이는 화면과 아저씨들 어깨 너머로 보이는 테이블 게임의 카드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강원랜드에서의 기억을 잠시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근무를 하던 중 나를 아주 예뻐라 하시던 과장님께서 부르신다.
“자네 홍콩 가봤나?”
“아직 가보지 않았습니다.”
“○○○ 프로젝트 때문에 내가 다음 달에 장관님 홍콩 방문을 수행하는데, 자네도 동행하지 않을텐가?
이번 기회에 국제적인 시각도 키우고 말이야.”
연공서열이 확실한 공무원 세계에서 공무원으로 들어온 지 5년도 채 되지 않은 나에게 장관님 수행을 보조하며 해외 출장을 다녀온다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우리 동기들은 물론 선배 기수에서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근데, 다른 선배님들도 계신데 제가 가기에는 아직은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과장님의 제안이 기쁘기는 했지만, 그래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가자면 가는거지.”
과장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나는 얼떨결에 장관님 일행을 수행하면서 홍콩 출장을 따라 나서게 된다.
출장을 가기 전, 홍콩 금융가에서 일하는 친한 대학 선배 형한테 전화를 걸었다.
“너 홍콩 오면 나한테 꼭 연락해라. 내가 그때는 휴가내고 너랑 제대로 놀아줄테니.”
그러나 4박 5일의 홍콩 출장은 장관님 스케줄에 따라 빡빡하게 짜여진 일정이었고, 수행원 중 막내였던 나에게 개인 일정은 있을 수 없었다. 당연히 홍콩 관광이나 쇼핑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선배 형도 전화통화만 하고 만나지도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야! 너 아무리 일 때문에 왔다고는 하지만 그냥 가면 어떡하냐? 다음에 주말 끼워서 한번 다시 와라.”
“알았어요. 형. 내가 시간 내서 다시 올게.”
그리고 출장 다녀온 2주 후 금요일에 연가를 내고 2박 3일 일정으로 형제처럼 지냈던 선배 형을 만나러 다시 홍콩에 다녀오게 된다.
홍콩 로컬의 맛집과 옛날 홍콩 느와르 영화 장면이 담긴 오래된 빌딩들을 돌아보던 나에게 선배 형은 갑작스럽게 묻는다.
“너 마카오 가볼래?”
그 형이 조용히 ‘너 마카오 가볼래?’라고 묻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가는데요?”
“성완에서 페리타면 금방이고,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어.”
우리는 당일치기로 마카오에 다녀오기로 하고, 토요일 아침 성완 페리터미널에서 마카오행 페리에 올랐다.
어린시절 ‘정전자’를 보며 마카오가 도박의 도시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건 그냥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는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홍콩에서 탄 페리가 마카오 항구에 도착할때쯤 보이는 금빛 번쩍이는 건물에 빨갛게 쓰인 ‘金沙’라는 건물(샌즈 카지노)은 지난 겨울에 강원랜드와는 완전 차원이 다른 규모였다.
선배 형은 제일 먼저 세나도 광장 주변에서 에그타르트를 사주고 세인트폴 성당 등 올드타운 주변을 구경시켜줬는데, 나는 다른 관광지는 관심없고 얼른 주윤발이 되어 카지노를 경험하고 싶었다.
“형! 우리 아까 페리 터미널 옆에 있는 곳으로 가봐요.”
그렇게 샌즈 카지노로 향한 나는 그 웅장한 규모에 말을 잃고 만다.
도떼기시장 같은 강원랜드만 보았는데(그것도 한번), 이곳 샌즈 카지노는 강원랜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우선 홍콩달러 500불을 칩으로 바꿨는데, 500불로는 게임을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돈 전부와 선배 형한테서 살짝 빌린 돈 3,000불을 칩으로 바꾸니 아주 넉넉하지는 않지만 테이블 게임 몇 판 할 만큼은 되었다.
샌즈 카지노의 광활한 공간을 지나가며 바카라, 블랙잭, 룰렛 등을 보는데,
선배 형은
“저 게임들은 아직 룰을 잘 모르니깐 제일 쉬운걸로 해보자.” 라며
나를 다이사이 테이블로 데려간다.
주사위 세 개의 합이 큰지 적은지, 홀수인지 짝수인지, 숫자 조합에 따라 돈을 걸면 확률에 따라 배당액을 주는데, 내가 보기에는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강원랜드 갔을 때도 세 겹으로 둘러싸인 다이사이 테이블에서 어깨 너머로 구경하던 적도 있어서 자신감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다이사이 게임.
미니멈 금액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으나, ‘소’에 500불을 걸었던 것 같다.
강원랜드는 뚜껑이 없었는데, 마카오 샌즈 카지노는 뚜껑을 덮은 채로 주사위가 튕겨진다.
딜러가 “노 모어 뱃” 이라 말하고 버튼을 누르면 통통통 소리가 몇 번 나고 뚜껑을 열린다.
‘2, 2, 3’ ‘소’ 승리
나의 카지노 테이블 게임 첫 성적이다.
“어라? 이거 어렵지 않네.”
다시 500불을 ‘소’에 건다.
다시 통통통 소리가 나고 뚜껑이 열리며
‘1, 2, 5’ ‘소’ 승리
“내가 이거 타고났나본데?”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다이사이 게임을 몇 판 더 했는데, 한 시간 만에 20,000불 정도를 따게 된다.
그런데 그때 나를 데리고 온 선배 형이 제동을 건다.
“이제 그만 가자.”
가만 생각해보면 이 선배 형은 홍콩에서도 좋은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그쪽 사회에서는 카지노를 즐기기는 하되 정도껏 해야 한다는 교육을 충분히 받지 않았을까?
샌즈 카지노에서 나와 마카오 로컬 거리를 다니다가 다시 페리를 타고 홍콩으로 돌아가는데, 지난번 강원랜드를 처음 다녀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머릿속은 온통 주사위가 통통통 튀겨지는 모습만 그려지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강원랜드를 갔을 때와 처음 마카오를 갔을 때 4만원으로 135만원을 만들고, 3,000불로 20,000불을 만든 것은 카지노의 악마가 나를 잡아먹기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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