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무원의 카지노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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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중학교 2학년
한 학년이 18반까지 있는 큰 학교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도 나름 잘했고, 담임선생님 교무수첩을 훔쳐보았을 때 적혀있던 IQ가 143으로 꽤나 머리도 좋았던 나는 무언가에 빠지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 나올법한 서울의 허름한 주택가 동네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들끼리 밤에 공부하겠다고 모여 치던 점 50짜리 고스톱이 어쩌면 내 도박 인생의 시작이었고, ‘영웅본색’에서 기관총으로 난사당하며 멋지게 죽었던 주윤발이 올백머리 도박의 신으로 살아돌아온 ‘정전자’라는 영화는 나와 친구들에게 도박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동네 비디오방에서 빌려와 비디오가 있는 부잣집 친구 집에서 지직거리는 비디오테이프로 돌려 본 중학생 조무래기 꼬맹이들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너도나도 문방구로 달려가 종이로 된 카드를 사서 서로가 주윤발이랍시고 잘 되지도 않는 셔플을 하며 포커 게임을 즐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허접하였던 그 종이 카드는 몇 번 사용하다보면 땀에 불어 두툼해지져서 셔플도 어려워지기 일쑤였다.
동네에서 비디오가 있는 집은 그야말로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그리고 중학생 남자아이들과 비디오가 결합하면 그 결과는 성적으로 한층 성숙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공식은 그당시 국룰이었다
친구 부모님이 계실 때는 그나마 건전한 홍콩 느와르 영화를 즐겨 보고, 부모님이 멀리 시골에 가시거나 야근으로 늦게 들어오시는 날에는 우리 무리들 중에서 가장 까진 녀석이 들고온 세운상가에서 믿음직한 형한테서 공수해온 제목없는 테이프를 보면서 우리가 몰랐던 여성의 몸을 탐닉하고, 어른들이 절대 알려주지 않던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가?”를 우리들끼리 학습하였다.
아직 고추에 거뭇한 털도 별로 나지 않았을 때 서로 누구 고추가 큰지 경쟁하고, 자위행위 하면서 누구 정액이 멀리 나가는지 시합도 하면서 정말 미친놈 같은 중2 시절을 보내던 우리는 어느 녀석의 제안으로 신박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청량리역 뒷골목 소위 588이라고 이야기하는 사창가에서 쇼윈도에 앉아있는 인형처럼 예쁜 누나들을 구경하러 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 가까워지고 날이 어둑해지자 가게들마다 정육점에서나 볼법하던 빨간 불빛의 형광등을 켜놓고 영업을 시작하였다.
우리가 긴장된 표정으로 골목을 지나가면, 누나들은 라이터로 창문을 똑똑똑 두두리면서
“니네 단체로 총각딱지 떼러 왔니? 누나가 잘해줄게!”,
“꼬마야~ 누나랑 놀다가!”,
“얘! 안경! 여기서 나랑 놀자!”,
“학생~ 연애 안할래?” 라면서 우리를 유혹하였다.
우리는 청량리 말고도 영등포, 용산 같은 곳에 원정을 다니며 예쁜 누나들 구경하러 다녔는데, 지금은 용산역 앞 고급진 주상복합 아파트도 그 당시에는 빨간 불빛이 빛나던 사창가였다. 그리고 용산역 앞 골목을 지나가던 내 눈에 어떤 누나가 확 들어왔다.
“우와! 미스코리아 장윤정보다 예쁘다!”
그 당시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감탄사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학교 끝나면 집에 가방 던져놓고 혼자서 그 누나를 구경하러 용산에 다녀왔다.
한 3일 내내 용산역 앞 골목을 지나가면서 그 누나가 있던 가게 앞에서는 천천히 걸어가고, 골목 끝까지 갔다가 다시 그 가게 앞을 천천히 지나가면서 바라보는데, 그 누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만 돌아다니고 이리 들어와! 누나가 잘해줄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떨리던지.
그러나 떨리는 것과는 별개로 내 발은 그 누나 앞으로 가서 딱 서있었다.
“놀러왔니?”
“......”
“연애하러 온거 아냐?”
“......”
“누나랑 연애할래?”
“......저...그런데...얼마에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가격을 물어보고 흥정을 하고 있었다.
“얼마 있는데?”
그때 나는 이 일을 대비하여 지난 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한 기념으로 외삼촌이 사주신 마이마이 카세트를 세운상가에서 중고로 팔고 남은 2만원이 있었다.
“2만원이요.”
“그래? 그럼 원래는 2만5천원인데, 너는 내가 특별히 2만원에 해줄게.”
그리고 그 누나를 따라 들어가 퀴퀴한 복도를 지나 들어간 방(여기도 빨간색 형광등이 밝혀진) 중학교 2학년 꼬맹이는 용산역 앞 미스코리아 장윤정보다 예쁜 누나에게 첫 동정을 바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대서 청량리역에 마중을 나갔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 시간이 남아서 빨간 불빛 588을 구경다니다가, 지금은 사라진 맘모스 백화점에 들어가 지하 1층 수입물품을 파는 코너에서 우연히 플라스틱 카드를 발견하게 되었다.
잘 구겨지고 쉽게 때 타고 땀에 젖으면 부풀어오르는 종이카드에서 플라스틱 카드로 바꿔 게임을 하니 드디어 나도 주윤발이 된 것처럼 느껴졌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깨가 상당히 올라갔던 아련한 기억이 난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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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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